장선생
어제 오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. 뉴욕 롱아일랜드의 양로원에서 온 전화이다.
장ㅇㅇ 를 아느냐구? 그리고 그사람과 어떤 관계이냐고 묻는다. 오래전 부터 아는 사람 이라고 했다. 왜 그러느냐고
물으니 그사람이 사망 하였는데 연락할수 있는 사람의 번호가 내 번호뿐 이라고 한다. 언제 사망 했으며 , 왜 사망 했는지
물었으냐 . 알겠다고 죽었다.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.
오래전 , 지금 사망했다는 장 선생과 처음 만나던날 이 새삼 떠오른다. 그때가 아마 20 여년전쯤 되었다. 나는 뉴져지의
어느 쇼핑몰에서 Cafeteria 를 했었다. 아침 이른시간 문열자 마자 허름한 차림의 한국사람이 왔다. 물론 쇼핑몰 안 에
있으니 지나가는 손님은 많으나 거의 미국인들 이고 동양인은 많지 않은 그런 몰 이였으니, 좀 의아해 했고 , 옆에 들고
있는 신문은 중국신문 이였다. 의자에 앉으며 커피를 시키는것이다. 한국 사람이다. 내가 물었다 . 중국신문을 들고 있어
중국사람 인줄 알았다고. 하면서 그 신문을 읽으시면 다 이해가 되느냐고? 했더니 한문을 배울려구요, 한다.
그렇게 장선생과 처음 만나 오랜시간 대화를 해 보니 한국에서 고등학교 선생도 했고 또 개인기업에서 일도 했고 하면서
지나간 얘기를 한다. 첫 인상과 달리 이런 저런 대화를 참 많이한 사람이다. 나이는 나보다 10년 년상의 그런 나이이고
한때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일본에 가서도 몇년 지냈고, 아무튼 삶이 편하지는 않아 보였다. 아버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
재일동포 이시고 삿뽀로에 산다고 했다. 또 이복 형제들도 그곳에 살고 있고,, 하면서 신상에 얽힌 얘기도 많이 해 주었다.
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와이프 와 이혼하고 혼자 지낸다고 했다. 이혼한 와이프는 같은 뉴져지에 살고 있었고
자기는 뉴욕의 부루클린 끝의 바닷가 코니아일랜드 에서 장사를 한다고 하며 ,, 또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.
3년전쯤 어느날 우리들이 자주 가는 패스트푸드점에 불쑥 나타나서 나에게 자기가 뉴욕의 양로원에 있는데 그곳에서
비상 연락처를 적으라고 하는데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겠다고 한다. 내가 그랬다. 적는건 좋은데 양로원에서
연락을 할때는 아프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사망시 이럴때 연락할려고 하는것 같은데 이혼했어도 부인 이였으니
그 전화번호나 아들 전화번호를 적으면 더 좋지않겠느냐고 했다. 그분의 얘기는 와이프 도 아들도 보기 싫어서
그러고 싶지않다고 하며 커피 한잔 나누고 돌아갔다.
그날 이후 내가 몇번의 전화를 해 봤으나 불통이였다. 그런후 사망했다는 연락이 나에게 온것이다. 내가 할수 있는게
아무것도 없다. 아마 가족이 연락이 않되면 미국법에 따른 장례처리를 할것이다. 많은 얘기속에 평생의 삶이 평탄치
않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도 많았던 분 이였는데 그의 죽음도 편치않게 마무리가 된 인생을 볼수 있었다.
편안히 영면 하시기를 빌뿐이다. 한국에도 딸 , 아들 형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연락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나
연락처도 다른 인적사항도 모르니 , 그렇게 마쳤구나 . 하는 생각일뿐. 고독한 이민자의 마지막 이다.